해야만 하는 몇가지 새로운 일들 때문에
7월이 시작되고 부쩍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
잘 마무리 하고 잘 시작한 지금은 많이 편안해졌다.
처음해보는 일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나는 그게 좀 심한 것 같다.
아직 해보지 않은 일이 참 많고, 경험해보고서 커나가야 할 여지가 많은데
용기를 내야지.
매번 반복되는 일을 숙련된 솜씨로 해나가는 노련함 뒤에 권태로움이 따르는 것처럼,
매번 다르게 주어지는 일들이 주는 어려움 뒤에는 배우고 성취해나가는 기쁨이 주어진다.
시작하기도 전에 잔뜩 겁먹고서 발을 동동구르고 있을 때,
다시 펼쳐본 '모든 요일의 기록'에서 힘을 얻었다.
차라리 회피하고 싶다는 마음이 잔뜩 커져있는데
지금 맞딱뜨린 어려움을 마음을 다잡고 마주하게 해준 책.
작년 가을,
집에서도 살 수 있는 책을 짐을 늘리게 되는 줄을 알면서도 굳이 사서
잠이 잘 오지 않았던 여행날 밤에 읽었었다.
다시 읽어보니, 그때와는 또 다르게 지금 내게 필요한 이야기들이 있었다.
누가 등떠밀어 억지로 들어온 것도 아니고, 내가 하고싶다고 시작한 일인데
이곳에 있기 싫다고, 이 일은 내가 할 일이 아닌 것 같다고 징징대는 내게
이 시점에서 필요했던 말.
이 책의 작가가 어떤 책을 읽고 느낀 것처럼
나도 '모든 요일의 기록'을 읽고서 그랬다.
때론 책이 우리를 구원한다. 책은 전혀 그럴 의도가 없었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는 책으로 구원받는다. 드물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곤 한다. 귀하게도. 고맙게도.
김민철, 모든 요일의 기록에서
1. 일상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자신에게 맡겨진 시간 안에서, 일상적인 세계의 일상적인 업무에 불후의 생명력을 불어넣을 것 같지 않은 그런 인물에게는, 진실이 어울리지 않는다.
......
그러니 나는 잠시 짬을 내어 마시는 커피에 한숨을 돌리고, 학원에 가는 길에서 새벽이슬에 젖은 나무들에 감사하고, 회사 난간에 서서 저녁노을에 먹먹해진 가슴을 느껴야 한다. 누군가가 내 아이디어가 좋다고 말해줄 때 진심으로 웃을 수 있어야 하며, 내가 쓴 글이 아니다 싶을 땐 다시 쓸 열정을 가져야만 한다. 바람의 서늘함에 옷깃을 여미며 가을을 느껴야 하고, 흘러내리는 땀방울이 지긋지긋하지만 여름을 만끽해야만 한다. 나란히 앉아서 그 사람과 마시는 맥주에 행복을 느끼고, 그 사람의 눈빛 속에서 다시 나를 찾아, 다시 일상을 꾸려 나갈 힘을 얻어야 한다. 그래야만 한다. 그것이 나의 일상이기 때문이다. 여행은 일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꿈꾸는 그곳은 이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지금,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그곳에서도, 그때 불만족스러울 것이다. 매일 먹는 바게트가 지겨울 테고, 대화할 상대가 없는 일상의 외로움에 몸서리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그땐 그것이 또, 일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의 의무는, 지금, 이곳이다. 내 일상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것, 그리하여 이 일상을 무화시켜버리지 않는 것, 그것이 나의 의무이다.
2. 지금, 여기서 행복할 것
하지만 김화영이 딱 잘라서 말을 했다. 냉정하게도. 잔인하게도.
"참으로 이곳에는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 아니 '지금'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은 올 것이 아니다. 이곳은 내일의 행복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올 곳은 아니다. 지금 여기서 행복한 사람, 가득하게, 에누리 없이 시새우며 행복한 사람의 땅"이라고 지중해에 대해 딱 잘라 말했다.
......
이것이 처음 <행복의 충격>을 읽었을 때 내 마음속의 지진이었다. 지금 행복하지 않은 나를 위한 공간은 지중해 어디에도 없다고 선언해버린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떠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능한 한 그곳에 살아남아 버티면서 멀고 구석진 고장에 서식하는 괴이한 식물들을 가까이에서 관찰"하라고 말하고 있었다.
......
그러니 중요한 것은 이것이었다. 일상에 매물되지 않는 것, 의식의 끈을 놓지 않는 것, 항상 깨어 있는 것, 내가 나의 주인이 되는 것, 부단한 성실성으로 순간순간에 임하는 것, 오직 이곳만을 살아가는 것, 쉬이 좌절하지 않는 것, 희망을 가지지 않는 것, 피할 수 없다면 온전히 받아 들이는 것, 일상에서 도피하지 않는 것, 일상을 살아나가는 것.
......
그리고 나는 회사를 다녔다. 묵묵히 일했다. 지금에 충실하기로 했다. 시지프도 견뎠다고 하지 않는가. 아니, 견뎠다는 말은 옳지 않다. 시지프도 자신의 일상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살았다고 하지 않는가. 끊임없이 굴러떨어지는 바위를 끊임없이 언덕 위로 밀어 올리면서도 한 치도 타협하지 않았다고 하지 않는가. 언제끔 내가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라는 헛된 기대도 하지 않고. 나는 어쩌다가 이런 고통을 당하게 되었을까, 라며 누군가를 원망하지도 않고. 이것이 나의 인생. 순간순간이 나의 인생. 이 인생의 주인의 나. 하물며 시지프도 그랬다고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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