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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들

연애는 무엇인가

마음속에서 불쑥 올라오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다스리지 못하고 이리저리 휘둘리는 스스로에 대해서 고민을 털어놓자, 친구는 넓은 품을 가진 마음으로 너를 진심으로 아껴주고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나면 좋아질 거야.”라고 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내 불안정한 마음은 나의 몫이지, 누군가에게 기댈 일이 아니라고 답했다. 친구는 그 말이 틀린 건 아니지만 사랑하는 사람에게 기댈 수 있다면 그것도 좋은 일이라고 나를 어르듯 말했다.

 

삼십대의 소개팅은 누굴 만나도 비슷했다. ‘너랑 나랑 어떻게 될지 두고 보자는 식의 만남. 적당한 이야기와 적당한 웃음으로 상대가 설사 내게 마음이 없다는 것을 드러낼지라도 실은 나도 당신에게 대단한 마음이 있었던 건 아냐라고 쉽게 발 뺄 수 있을 만큼의 마음만을 주고 받는다.

 

그러다가 좀 남다른 사람을 만났다. 내가 정말 좋다고 하는 사람, 짓궂은 장난을 쳐도 나를 보고 활짝 웃어주는 사람. 이런 사람이 내 앞에, 이런 타이밍에 나타날 줄은 정말 기대하지 못했다.

 

친구의 카톡 친구 목록 사진을 보고 내게 호감을 가졌다는 그는 소개팅을 해달라고 친구를 한참이나 졸랐단다. 은행원인 그는 늘 연금과 저축을 생각하고 미래의 가족을 떠올리며 지금의 고생을 감내하는 사람, 나는 모은 돈 하나 없이 하루살이 마냥 내가 누릴 수 있는 나의 즐거움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 그는 또 자신의 시간을 친구들과 어울리며 기쁨을 찾는 사람, 반대로 나는 나만의 오롯한 시간에서 행복을 찾는 사람이다. 이렇게 다른 우리 둘을 아는 친구는 밥이나 한 끼 먹으라며 마지못해 소개팅을 주선했고, 한두 번 만나고 말 것이라는 친구의 예상과는 달리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친밀한 사이가(아마도 그에게는 가족 다음으로) 되었다.

 

애인이 매일매일 너무너무 좋아지고 있는 타이밍에 딱 맞추어, 1년 반 넘게 내 마음을 너덜너덜 하게 했던 예전 사람에게 온 연락. 그 때에는 그 사람과 정말 헤어지고 싶지 않았는데 내 마음과는 달리 나랑 헤어지길 바라는 그 사람의 마음을 받아들이기까지 정말 많은 날들을 힘들어해야했다. 매몰차게 이별을 고했던 그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데, 좋아하는 마음이 남은 것도 아니었는데, 그때 그 마음이 아직 아물지 않아서였는지, 통화를 하면서 많이 울었다. 많이 운 그날 밤 이후 후유증이 제법 길 것 같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그 이유는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이 얼마나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인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를 그 전화 통화 이후 새삼 매일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전 사람 때문에 이 사람의 마음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끔 그에게 서운함을 느끼고 토라졌고, 그 때 마다 그 사람은 마음 넓게 나의 투정과 화를 받아주었다. 내가 그에게 서운했던 이유는 주로 연락 문제. 아침 일찍 출근해 잦은 야근을 하는 그는 머리를 누이기만 하면 잠에 드니 가끔씩 내게 연락하는 것을 잊었다. 나는 이 사람이 나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 이런저런 설명도 구차하게 느껴져 나의 주특기인 연락 받지 않기를 발휘했다. 내가 어떤 것으로 마음 상하는지 알면서도 이 사람이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혼자 서운한 마음을 키웠다. 나를 달래주러 와 준 남자친구는 네가 뭐가 화나고 서운한지 얘기를 해주면 내가 거기에 맞춰 줄텐데 왜 연락을 받지 않냐고,” 속상하다며 나중에는 울기까지 했다. 우는 남자친구를 보는 내 마음은 찢어지는 것 같았다.

 

이번에도 느낀 것이지만 상대에게 무엇이 서운하니 어떻게 행동을 해달라고 이야기하지 않고, 내 마음을 몰라준다며 입 꾹 다물고 혼자 끙끙 앓고 있는 것은 관계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일련의 일들을 통해 우리의 문제는 나의 마음을 솔직하게 전달하는 것이 해결의 열쇠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냥 이 사람을 믿으면 되는 것이다. 이 사람은 결코 나를 일부러 서운하게 할 사람이 아니고, 나를 많이 사랑하고 있고, 나도 그를 많이 사랑한다는 것을. 그리고 여유를 가질 것. 명확하지 않은 이유로 서운하고 화가 날 때, 쉽지는 않지만 여유를 가지고 그 문제에 대해서 좀 거리를 두고 생각해 볼 것.

 

콩깍지가 단단히 쓰였는지 내 눈에는 모공하나 없이 흰 피부에, 축구를 그렇게 하면서도 발뒤꿈치에 굳은살 하나 없이, 아기의 그것 같이 연한 머리칼에 아기 냄새가 나는 남자친구가 곤히 자는 모습을 바라보며, 이렇게 고운 사람이 어느 하늘에서 툭 떨어져 이렇게 나를 좋아해주고, 또 이런 나 때문에 마음고생을 하는 구나, 싶어 뺨만 쓰다듬는 일요일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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