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을 때
그 마음이 모호하여 결정내리지 못하고 있을 때
마주하게 된 어떤 책이나 영화, 노래가 없었다면
하지 않았을 일이 있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그것들을 내 식으로 해석해서 행동으로 옮길 것을 정당화 해버리고 만다.
또 어떤 것들은 꼭 내 마음같다.
내 마음같은 말들이다.
지난 봄, 유어마인드에서 구입한 애슝의 토크.
처음에 봤을 때도 그랬는데 어제 다시 봐도 유독 머무르게 되는 페이지에는
나 정말 지쳤어.
결론짓기 어려운 관계 안에도 대화는 있었다.
라는 말이 쓰여져 있다.
쉬면서 읽은 책 한권은...
이번 주말에는 여러 책을 읽어야지. 했지만
그냥 이 책 한 권으로 족하다는 마음.
책을 읽고 용기를 내기로 했다. 한 때 품었던 마음을 접어두고 나다운 나로 돌아가기로.
연애소설이 필요한 시간.
1. 요조
얼마 전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이었다. 나는 "아, 외롭네"하고 내뱉었다. 옆에서 운전하던 친구는 킥킥 웃었다. 그런데 기분이 너무 이상했다. 갑자기 말을 잘못 내뱉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아니, 잠깐만 이게 이 말이 아닌데. 나는 바로 외롭다는 말을 취소했다. 비슷하지만 엄연히 다른 감정인 것 같다고 했다. 적확한 단어를 궁리하는 동안 집에 도착했다. 집에 들어와서도 옷을 벗지도 않고 침대 끝에 걸터앉아서 계속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아까 내가 정말 내뱉고 싶었던 단어는 '외로움'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절망' 쪽에 가까운 것 같았다. 사전을 찾아보았다. 눈물이 찔끔 나올 만큼 절망은 가련한 단어였다.
......
가끔은 가만히 앉아 있으면서도 내가 소금 뿌려진 미꾸라지처럼 발광을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였다. 왜 지푸라기라도 잡으려고 이 난리를 치고 있을까. 정말 잡고 싶은 것은 지푸라기도 아니면서. 나는 매일 징그럽게 굴었고 그 징그러운 나를 내가 다 지켜보았다.
......
말하자면 나는 '절망'을 어렴풋이 대면하기는 했으나 정말로 절망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도 몰랐다. 그러나 이렇게 매일 징그럽게 살 바에는 차라리 제대로 절망하고 방전하고 눈이 붙고 입이 붙고 그래서 말라 죽은 나무처럼 되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체념에서 오는 안락함이 그리웠다.
너무 힘들었다. 힘들었다. 힘들었다.
......
나는 더 엄격하게 징그러워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절망을 서둘러 아는 방법으로써가 아니라
파멸하지 않음으로써. 구원으로써. 속임수로부터의 해방으로써.
2. 김소연
한 사람이 한 사람을 항상 의아해할 수 있어서 나쁘진 않았지만, 한 사람이 한 사람을 항상 참고 견디고 있다는 괴로움이 늘 잠복해 있었다. 잠복기가 회복기를 갈망할 즈음에는 노력을 해야 하지 않느냐고 다투게 되었다. 노력을 해야 한다며 다그치다 시작된 다툼은 다그치기보다는 이해를 해야 옳다는 합의를 만들며 명쾌하게 종료되곤 했다. 노력을 했지만 지속성이 떨어졌고, 애써 이해를 했지만 기억력이 짧았다. 노력과 이해가 습관처럼 저절로 몸에 배게 되는 세월이란 것이 우리에게도 찾아올 것을 믿었다. 세월이 오래 흘러 노력과 이해 없이 저절로 익숙해질 때까지. 그는 나를, 나는 그를 이상한 사람으로 바라보았다. 이상해서 흥미로운 사람으로 내버려 두기로 했다.
......
뚜레쥬르 테라스에서 우리는 마지막 약속을 했다. 우리는 그 약속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지켰다. 누구 하나 약속에 대해 발뺌하지 않았고, 누구 하나 약속에 대해 강요할 필요가 없었다. 내가 그의 마음을 읽고 가장 현명하게 선택할 수 있었던 마지막 제안이었다. 헤어지자는 말은 우리가 가장 잘 지킬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약속이었다. 그는 나를 비로소 완전히 이해하게 되었으나, 이해를 하는데 지쳐 더 이상 사람을 사랑할 능력을 상실했다. 나도 그를 비로소 완전히 이해하게 되었으나, 사랑을 믿을 수 있는 에너지를 거의 소진했다. 뚜레쥬르 이후, 그는 그의 이상한 병 속으로 다시 들어가 그다워졌고, 나는 나의 이상한 병 속으로 다시 들어와 나다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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