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너무 쉬고 싶어서 휴가를 내고 금요일부터 빨간 날.
아주 천천히, 조금씩, 딴짓을 더 많이하면서 책을 읽었다.
집에 안읽은 책이 잔뜩인데도 친구랑 얘기거리 떨어지면 읽으려고 에세이를 한 권 샀지만
결국 수다는 집에 갈 때까지 끊기지 않고,
집에 책 늘린 것에 대한 부채감으로 오늘 부지런히 읽어내려간 이 책은 그냥 그랬다.
혹시 또 모르지, 시간이 지나 내가 좀 달라져있을 때에 읽는다면 좋을지도.
작년 언젠가부터
저자가 거닌 공간과 그곳에 담긴 생각들로 이루어진
난다의 걸어본다 시리즈를 몇 권 읽었다.
기획의도라고 해야하나. 이렇게 설명이 되어있다.
바야흐로 산책.
느긋한 마음으로 이곳저곳을 거닐 줄 아는 예술가들의 산책길을 뒤따르는 과정 속에 저마다의 '나'를 찾아보자는 의도로 이 시리즈는 시작됐다.
작년에 감당하기 힘든 감정들을 풀어보려고 시작한 산책.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머리를 묶고
이어폰을 꼽고서 걷고 또 걸어다녔다.
잠이 안오는 것이 두려워 몸을 피곤하게 하려고 걸었다.
너무 힘들어서 이제는 좀 편안해지고 싶다고 속으로 간절히 바라며 걸었다.
여행지에서도 쉬지 않고 숲길을, 산길을 몇 시간 동안 내리 걸었다.
걷다보면 응어리진 마음이 좀 풀리는 것 같았다.
계속 하다보니 '걷기'라는 행위가 부쩍 좋아졌기에
'걸어본다' 시리즈에 끌린 것이 자연스러웠다.
그렇다고 마냥 읽기 쉬운 글들은 아니지만 곱씹고 또 곱씹어 보는 즐거움이 있다.
요즘들어 남들은 어떻게 사랑하고 있는지 더 궁금해졌다.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어쨌든 그만큼 사랑하지 않아서라는 결론을 내린 후
사랑이 이루어지기 힘들 만한 상황에 있어도,
그것 때문에 남들의 곱지 않은 시선과 모진 말들에 상처를 받았을텐데도
끝끝내 서로의 마음만을 가장 중요히 여겨 사랑을 하고 , 사랑을 지켜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너무도 부러웠다..
박연준, 장석주 시인의 에세이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
결혼 선언을 대신한 책이라니 멋지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에 중점을 둔 것은 아니고
부부가 한국을 떠나 시드니에 있는 지인의 집에 머무른 시간들에 관한 책이다.
낯선 공간에서 느낀 여전하고도 새로운,
서로에 대한 감정들도 그려져 있지만
시드니라는 장소가 두 시인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그곳에서 어떤 생각들을 했는지를 그려낸 에세이다.
두 시인의 글이 책 한권을 사이좋게 반반씩 차지하고 있다.
서문이 인상깊어 부분들을 옮겨본다.
나도 진짜 사랑을 하면 이 괴팍하고 상처받은 마음이 순해질 수 있을까.
당신의 고독까지 기꺼이 받아들이겠다고 결심할 수 있는 사랑을 할 수 있을까.
1.
우리는 '새벽의 나무 둘' 처럼 - 박연준
자기 감정을 아는 것,
사랑은 거기에서 출발합니다.
지금 나는 순해졌습니다.
지독함이 스스로 옷을 벗을 때까지,
사랑했거든요.
우리는 새벽의 나무 둘처럼
행복합니다.
잉걸불 속으로 걸어가는 한 쌍의 단도처럼
용감합니다.
그때 별들이 왜 하필 이쪽으로 걸어왔는지
알 것도 같습니다.
2.
'1인분의 고독'에서 '2인분의 고독'으로 - 장석주
'1인분의 고독'에 웅크려 있던 내 내면을 들여다보니,
거기 두려움이란 짐승이 불안한 눈동자를 하고 숨어 있더군요.
짐승의 눈에 겁이 잔뜩 들어 있어 가엾었어요.
'1인분의 고독'을, 그 자유와 고요를 잃을까봐 두려웠던 것이지요.
이제 망설임을 떨치고 용기를 냅니다. 사랑이라고 해도 좋아요.
어떤 사이프러스 나무도 바람을 두려워하지 않아요.
그래서 '2인분의 고독'을 덥썩 받아 품습니다.
사랑이란 '2인분의 고독'을 뜨겁게, 늠름하게 받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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