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들

솔직함과 사랑에 관한 글

구월의 칠 2015. 5. 10. 11:52

트위터의 바다에서 헤엄치다가 여러 개의 추천글을 보고 주문한 <나의 사적인 도시>.

받아보고 표지만 쓸어보다가 이제야 짬이 나서 읽는 중인데

책 낱장 귀퉁이마다 접어 두거나 밑줄 긋고 싶은 곳이 너무 많은 책이다.

 

어제 기차 안에서 읽으려고

이 책을 가방에 넣어온 것은 정말 잘 한 일.

새겨두고 싶은 글이 있어 이 곳에 베껴둔다.

 

그동안 솔직함과 사랑에 대해서 내가 내린 정의와는 다른 의미도 담겨 있음을 알게 해주면서도

공감을 하게 되는 글.

 

박상미, 나의 사적인 도시

 

p.56 솔직함

뭐든 다 말하는 것이, 똥 싸고 오줌 싸고 방귀 뀌는 걸 다 말하는 것이, 솔직한 것만은 아니다. 자기 자신을 최대한 노출함으로써 솔직함에, 진정함에 다다르고자 한다면 그것은 핵심을 벗어난 일이 될 것이다. 일이 핵심에서 벗어나면 부패한다. 매 순간 치열하게 나 자신에게 솔직해지도록 노력함으로써 어디선가 그 솔직함이 그보다 위대한 형태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것, 그것이 솔직함의 의미이고 핵심이다.

 

p.102 매혹과 사랑사이

포기와 희생. 인간의 진화론적 이해가 속시원할 때도 있는데 이들도 진화론적 차원에서 설명이 가능할까? 궁극의 짝짓기를 위한 희생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사랑은 언제나 짝짓기 이상을 암시한다. 인간에게만 시가 있고 예술이 있듯, 인간에게만 사랑이 있고 역설이 있다. 사랑이 위대한 건 그렇게도 잘난 자아가 지워지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을 지울 수 있는 상태, 이 세상에서 자기 자신을 삭제할 수 있는 불가능에 이르는 위력, 사랑하는 건 인간만이 가능하다.

 

극단적인 상황에 처하지 않고 평생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힘든 상황 속에서 사랑 때문에 자기가 가진 것들을 포기하며 불가능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을 두고 "여자 때문에 신세 망친 사람" 또는 "여자는 남자를 잘 만나야 해"라고 말하며 매도한 적은 없는지. 그들이야말로 에우리디케를 따라 저승으로 내려가는 것도 서슴지 않은 오르페우스이고 아벨라르를 위해 수녀가 되었던 엘로이즈일지도 모르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