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하면 잘했어'를 이해하는 방식
3월에는 잦은 야근과 주말 출근에 개인적인 시간이 거의 없는 것이 아쉬웠다.
일에 매몰되면 생활이나 생각이 단조로워지는데 이것이 주는 장점도 있겠지만,
충전되지 않고 소모되기만 하는 기분이 계속되면 또 이것대로 힘들어진다.
내게 주어진, 한정된 시간과 경제력과 에너지를 가지고
자신을 충전시킬 수 있는 방법으로 내가 즐겨하는 것은 영화와 공연을 보러다니는 것.
재능있는 창작자의 좋은 작품을 통해
내가 가진 경험과 내가 하는 생각들을 가지고
나를 정리하는 시간. 이것이 내가 영화를 좋아하고 보러다니는 이유다.
3월에 본 버드맨과 조류인간, 위플래쉬는
새삼스레 영화가 얼마나 매력적인 매체인지를 (창작자에게나 관객에게나)
느끼게 해준 훌륭한 작품들이었다.
'영화'는 그 특성상 평범하면서도 특별함을 가진 사람들을 다루게 되는데
버드맨과 조류인간, 위플래쉬는
평범한 한 사람이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위해 안간힘을 쓰다
결국 극한까지 이르게 되고,
가질 수 없을 것 같았던 그 꿈에 다다르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원하는 것을 이루기위해 모든 것을 다 쏟아부은 적이 있는가'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 적이
있지만 이 질문에 '그렇다' 라고 답할 수는 없다.
나는 스스로를 극한까지 몰아붙이는 사람들을 그린 이런 영화를 통해
삶을 대하는 태도가 나와는 다른 사람들을 지켜볼 수 있다는 즐거움(?)을 느낀다.
100분 이라는 시간이 주는 흐름이 평소와는 다르게
아주 빠르게 흐름을 느꼈던 위플래쉬는
'그만하면 잘했어'라는 말이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다는 가치관을 지닌 냉혹한 지휘자인 플렛처 교수와 최고의 드러머가 되고 싶어하고 그것을 플렛처 교수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네이먼의 이야기다.
교수든, 상사든,
좋은 성과를 위해서라면 상대의 존엄 따위는 무시해도 된다는 신념을 가진
플렛처와 같은 사람을 만나게 되면
나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상처를 받고 좌절하며 떠나게 되지만
이것을 버티고 이겨낸다면 결국 그 사람은 성공하게 되는 것일까.
네이먼이 자신을 골탕먹이려던 플렛처에게 나약한 도망자의 모습을 보이며 도망치지 않고
그에게 맞서 자신의 재능을 폭발적으로 표출하고 결국 그에게 인정받는 결말.
한 번 더 보고싶을 정도로 즐거운 긴장감을 누리게 해준 영화였지만
'그만하면 잘했어'라는 말에 담긴 의미를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차이와
그것에서 비롯된 가치관이 삶을 대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얼마나 다양하게 만드는 가를 생각해봤을 때,
플렛처 교수에게 나는 절대 동의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좌절과 절망 속에서 사람의 재능이 드러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격려와 희망을 통해 빛을 볼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가까이 있고 싶다.